경마장과 증권회사
영국에 오고 얼마 되지 않았던 작년 가을, 하루는 같이 입학하신 YS누님의 기숙사 방에 집뜰이 구경을 갔다.
이런 저런 구경을 하다가 책꽂이 위의 책 한 권에 눈길이 갔는데, 제목은 "월 스트리트의 포커페이스 (The Poker Face of Wall Street)"였고, 표지의 사진은 카지노 테이블 위에 놓여진 칩과 카드를 든 손이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책의 저자는 Aaron Brown 이라는 남자다. 이 사람의 홈페이지는 여기이고 생긴 것은 위와 같다. 건달같이 생긴 외모와는 같이 브라운은 월스트릿 금융가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걸어왔다. 우선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응용수학을 전공하고 시카고 대학에서 금융학을 공부했다. 한편 하버드에서 그는 공부 뿐 아니라 포커도 시작했는데, 특히 하버드 MBA들과 큰 판을 많이 벌렸는데 학비와 생활비 정도는 여유있게 벌 수 있었다고 하니 이 방면에 재능이 있었나보다.
007 영화에서 미화되듯이 미국과 유럽에서는 포커는 남자들의 로망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다른 도박에 비해 포커는 운보다 배짱이 승부를 더 많이 좌우한다. 그렇기에 포커판에서만큼 사람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곳도 없다. 그래서 더더욱 자신이 남성적이고 성공적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이 포커판으로 달려든다. 포커는 이미 TV에서도 대 히트를 치고 있다. 도박꾼들간의 심리 싸움을 지켜보는 것이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브라운은 포커판에서도 돈을 벌지만 그보다는 금융업계에서 돈을 더 많이 벌었다. 약 20년동안 그는 시티뱅크, JP모건, 모건스탠리, 프루덴셜 등을 옮겨다니면서 트리이더와 펀드메니저로 일해왔다. 이렇게 투 잡을 뛰면서 그가 느낀 바는 다음과 같다.
"Finance can only be understood as a gambling game, and gambling games can only be understood as a form of finance" (금융은 도박의 일종이라고 이해되어야하고, 도박은 일종의 금융이라고 이해될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저 문장의 앞부분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뒷부분은 그렇지 않단다. 금융이 도박이라는 건 너무나 명백하다. 하지만 도박도 금융이라고? 사실, 금융업계에서 일하지 않는 일반인이라면 앞부분 조차 인정하기 힘들지 모른다. 금융이 도박이라면 번듯한 증권회사에 다니는 금융맨이나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패돌리는 딜러나 마찬가지라는 얘기 아닌가?
브라운의 답은 yes.
"Anaything you win comes from someone else who loses, all relative to the average return. The bets are negative sum because there are taxes and transaction costs fro mthe exchanges, just like the house edege in a casino."
(평균에 비해서 당신이 더 버는 돈은 누군가가 잃은 돈에서 나오는 것이다. 모든 투기(투자)는 평균적으로 마이너스 수익이다. 왜냐하면 세금과 수수료로 나가는 돈이 있기 때문이다. 카지노에서 하우스비로 나가는 돈이 있듯이."
아닌게 아니라 펀드던 주식이던 ELW건 뭐건간에 결국 도박이다. 내가 직접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내 돈을 특정한 품목 (underlying asset)에 베팅을 하는 것이다. 내가 미래 에셋 중국 펀드를 산다는 것은 결국 중국의 주가지수가 오를 것이라는 데에 베팅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카지노의 룰렛에서 "홀" "짝"에 거는 것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변명과 반박
금융계의 신성함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변명은, 주식에 투자하는 돈은 그 회사의 투자자금으로 쓰이기 때문에 경제를 활성화 시킨다는 것인데, 이게 과연 그럴까? 내가 오늘 삼성전자 주식을 100억원 어치 사면 그 돈이 삼성전자의 투자자금으로 쓰일까? 답은 아니다. 회사는 주식을 처음 발행할 때 이미 투자금을 다 걷었고, 이후의 주가의 움직임은 투자자들끼리의 돈놓고 돈먹기일 뿐 회사와는 무관하다.
"Most capital allocation takes place outside the trading markets and, anyway, is far too indirect to justify the amount of trading that takes place."
((기업) 자본 축적의 대부분은 주식 시장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지고, 어쨌거나 주식시장에서 오고가는 거래량을 정당화하기에는 그 양이 너무 적다)
주식 시장의 활성화가 기업의 자금 운용과 별 관계가 없다는 증거는 너무나 많다. 우선, 20년 전에 비해 현재 전세계 주식 (및 기타 금융) 시장의 하루 거래액은 몇 십 배가 커졌지만 기업들이 자본을 모으기가 그만큼 쉬워진 것은 아니라는 것만 봐도 그렇다. 사실상 별 차이가 없다. 그러니 금융 시장에 들어간 그 여유분의 돈은 결국 기업활동과는 관계 없는 도박 자금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금융시장에서 돌고 도는 돈이 많아질 수록 수수료를 챙기는 금융업체들의 배만 불러갈 뿐 실제 실물 경제를 구성하는 회사들에게는 그다지 큰 메리트가 없다. 지난 10, 20년 동안 금융산업이 발달하고 복잡한 금융상품들이 발명되었지만 과연 누구를 위해서였는가?
또, 주식 시장이 열리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도 역시 금융업의 도박장화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식 시장은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6시간 동안 열리는데, 공교롭게도 이 시간은 대부분의 직장인이 근무하는 시간과 겹치며 따라서 주식투자를 하는 많은 직장인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주가 차트를 보느라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사실 주식 시장은 하루 6시간이 아니라 6분만 열려도 기업 활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주식을 거래하는 투자자들끼리만의 문제일 뿐이다. 사실 장이 길게 열리면 길게 열릴 수록, 하루종일 그것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전문 투자가와 기관들만이 유리하다. 회사 눈치를 보면서 가끔 들락날락하는 샐러리맨 투자가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해질 수 밖에 없는데, 어떻게 된 것이 이런 개미 투자가들이 본인들의 이해관계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장 열리는 시간을 늘려달라고 투정들을 하는 것을 보면 세상에 참 돈벌기 쉽겠다는 생각도 든다.
장이 닫혀있는 시간에 기업에 중대한 변화가 생기면 그 변화는 다음날 장에 반영되면 그만이다. 주식 거래를 하루에 5, 6시간 이상씩 하게 해주면서 그것을 투자자를 위한 배려라고 하지만 그것은 마치 카지노 룰렛판 위에 공이 단번에 떨어지지 않고 열 몇바퀴를 빙글빙글 돌면서 투자자를 애태우면서 떨어뜨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혹은 경마장에서 말을 100미터만 달리게 해서 승부를 내도 될 것을, 굳이 1km, 2km 뛰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도박판에 돈을 건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고 스릴을 느끼고 또 그만큼 돈을 더 걸게 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여기에 따른 이득은 물론 도박판을 벌여주는 하우스가 가져간다. 즉, 금융업계 종사자들과 주식시장을 관장하는 국가가 챙겨간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본능적으로 잘 인식하고 있다. 누구나 주식투자는 일종의 도박이라는 것을 안다. 펀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요상하게도, 이런 도박판을 벌이는 금융업계에 대해서는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한국을 "동아시아 금융허브"로 만들자는 얘기는 곳 "동아시아 도박허브"로 만들자는 것과 별반 다를바가 없는데 아무도 이런 지적을 하지 않는다. 경마장, 경륜장에서 일하는 사위 며느리는 보기 싫어도 증권회사,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사위 며느리는 자랑스러워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경마장에는 잠바입고 출근하고 증권회사에는 넥타이메고 출근한다는 것 뿐인데도 그렇다.
브라운의 말은 금융회사가 좋다 나쁘다, 도박이 좋다 나쁘다라는 걸 가리자는 것이 아니다. 나도 도박을 즐긴다. 금융투자도 즐긴다. 금융과 도박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나도 100% 공감한다. 아울러 정부에서 증권거래 시간을 지금의 6시간에서 30분으로 줄여줬으면 좋겠다. 증권시장이 매일 점심 12시30분에 열려서 1시에 닫히면 증권 차트 들여다보느라 업무 소홀히하는 직장인들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되면 기관들에 비하여 개인투자자들의 불리함도 줄어들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시장에 상장된 주식회사들의 업무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음은 물론이다.
Betfair: 금융과 도박의 벽 허물기
미국과 영국에서는 스포츠 도박에 상당히 활성화 되어있다. 카지노사업이나 금융사업이나 결국 다 도박에 불과하고 이것들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에는 별 차이가 없는데, 금융은 장려하면서 카지노는 제재할 근거가 어디있냐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그러고보면 우리나라의 현행법도 문제가 많다. 해외 원정도박을 가면 범죄자라고 구속을 하고 감옥을 보내는데, 강원도 정선으로 도박을 하러 가면 온갖 환대를 받는다. 또, 집에서 점 당 천원, 만원으로 고스톱을 치면 범죄자라고 붙잡아가는 정부가 한편으로는 로또, 스포츠 토토 같은 범 국가적 도박판을 벌이고 있다. 도박을 장려해서는 안되겠지만 적어도 법에 일관성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스포츠 도박은 그 역사가 깊다. 특히 야구나 축구 같은 현대적인 스포츠가 나오기 이전부터 경마, 복싱(결투) 같은 종목에 돈을 거는 것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스포츠 도박에 큰 획을 그은 것이 인터넷의 등장이다. 이전까지는 스포츠에 돈을 걸기 위해서는 bookmaker, bookie 라고 불리는 도박사들에게 직접 가서 돈을 주었어야 했는데 인터넷 도박사이트의 등장으로 인해 집에서 편하게 앉아서 돈을 걸 수 있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스포츠 도박 사이트는 영국의 벳페어 (Betfair)라는 업체이다. 2000년에 런던에서 앤드류 블랙과 에드워드 레이라는 두 영국인에 의해 설립된 이 회사는 현재 세계 140국에 250만명의 회원을 갖고 있고 매일 6백만 건의 베팅을 접수한다. 매년 꾸준히 성장한 결과 연간 매출액은 6000억원에 달하고 (여기서 매출액은 순 수수료를 의미한다. 전체 거래액은 연간 5조원이 넘는다) 순이익이 1400억인 알짜 회사가 되었다. 도박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영국내에서 평판도 좋아서 2003년에는 영국 여왕이 주는 "Queen's Award for Enterprise"라는 일종의 훈장까지 받았다. 직원수는 1600명인데 그 중 400명이 베팅의 알고리듬을 짜는 컴퓨터 엔지니어라고 하니, 도박회사라고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Exchange betting의 로직
Betfair가 스포츠 토토같은 일반적인 스포츠도박 회사와 차별되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게 된 이유는 "exchange betting"이라는 시스템 때문이다. Exchange는 "거래"라는 뜻이다. 나의 베팅을 다른 누군가와 거래한다는 말이다. 스포츠 베팅을 마치 주식시장에서 주식이 거래되는 것처럼 만든 것이 이 회사의 혁신이다.
주식투자를 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겠지만 주식을 살 때는 정해진 하나의 가격이 있는 것이 아니다. 파는 사람이 내놓은 가격과 사려는 사람이 부르는 가격이 따로 있다. 내가 삼성전자 주식을 720,000원에 산다는 얘기는, 누군가 720,000에 팔려고 내놓은 것을 내가 집어갔다는 이야기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720,000원에 주식을 팔았다는 얘기는 누군가는 그 값에 사갔다는 말이다. Betfair도 마찬가지이다. 주식시장에서 "삼성전자"같은 종목에 해당하는 것을 Betfair에서는 A팀, B팀으로 대체할 뿐이다.
예를 들어 기아 타이거스와 SK 와이번스의 야구경기가 있다고 하자. Betfair는 이 경기에 대해서 "기아 승리" "SK 승리" "무승부"라는 주식을 만들어준다. 그럼 사람들은 이제부터 자유롭게 이 세 종목을 사고 팔게 된다.
만일 내가 "기아 승리"라는 종목을 사고 싶다고 하자. 나는 이 종목을 3.0에 사고 싶다. 3.0이란 말은 기아가 이기면 원금 포함 세 배로 돌려받고 싶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을 Back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이 종목을 지지(Back)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돈을 걸었다고 해서 바로 거래가 성사되는 것이 아니다. 주식시장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나에게 그 종목을 팔아줘야 내가 살 수 있다. 즉, 누군가가 나와 맞도박을 걸어야 한다. 누군가 나의 베팅을 받아줘야 한다. 이것을 Lay 라고 한다. Back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그에 대해 Lay하는 사람도 있어야 베팅이 성사된다. 즉 이용자간에 주식을 거래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기아가 이긴다"에 돈을 걸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 반대편에는 "기아가 이기지 못한다", 즉 SK가 이기거나 양 팀이 비길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내가 "기아 승리"에 3.0에 베팅을 했는데, 내 친구 승환이는 기아가 이길 가능성이 5%도 되지 않는다고 본다면 승환이는 당연히 내 베팅을 받아주는 Lay를 해 줄 것이다. 그래서 만원을 "기아 back", 배당 3.0에 거는 거래가 나와 승환이 사이에 이루어졌다고 하자. 경기가 끝나고 내 예상대로 기아가 이기면, 나는 승환이에게 내가 건 원금 포함 3만원을 받아야 한다. 반대로 기아가 지거나 비기면 승환이는 내가 걸었던 판돈 만원을 가져가면 된다.
복잡하게 들리지만 원리는 주식시장과 똑같다. 즉 도박에 대한 배당율을 도박장에서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들 서로간에 사고 팔도록 해준다. 월드컵 대회가 있는 해마다 신문에는 "영국의 도박업체 어쩌구는 브라질팀의 우승 확률을 1/8, 한국의 우승 확률을 1/200으로 보고 있습니다"라는 기사가 뜬다. 이런 업체들은 업체들에 소속된 축구 전문가들이 각국의 승리 확률을 나름대로의 경험을 통해 예측하는 것이다. 하지만 벳페어는, 전문가가 아닌 일반 고객들끼리 서로 사고 파는 거래를 하는 와중에 가격, 즉 확률과 배당률이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철저하게 시장논리에 따르는 자본주의 시스템이다. 실제 벳페어의 베팅 화면은 아래와 같다.
San Lorenzo라는 팀과 River Plate 라는 두 팀이 별이는 축구경기에 대한 베팅이다. 현재 San Lorenzo 라는 팀이 이긴다 (Back)는 종목의 매수 배당률은 4.1이다. 반면 이 종목에 대한 매도 가격, 즉 San Lorenzo가 이기지 못한다는 사람들이 내놓은 배당률은 4.9이다. 이렇게 Back과 Lay 의 차이가 있는 것은 주식시장에서 같은 종목의 사자 가격과 팔자 가격에 차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옵션?
이러한 방식이 일견 복잡하지만 사실 주식시장과 다를바가 없다는 것을 알게되면 그 다음부터는 굉장히 흥미진진해진다. 예를 들어 San Lorenzo팀이 이긴다 (Back)에 지금 돈을 만원 건다고 하자. 지금 배당율은 4.1이다. 그러니까 내가 만원을 걸었는데 정말로 이 팀이 승리하면 나는 원금 포함 4만1천원을 돌려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전반전에 San Lorenzo가 두 골을 넣어서 하프타임 스코어가 2-0 이 되었다고 하자. 그러면 이 팀이 이길 확률이 굉장히 높다. 축구에서 두 골 차를 후반에 뒤집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 팀을 Back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사려는 사람은 많고 팔려는 사람은 적으니 당연히 배당은 낮아진다. 아마도 하프타임의 배당률은 1.5 정도 되었을 것이다. 이말은 지금 만원을 걸면 이겨도 원금 포함 만오천원 밖에는 못받는다는 이야기이다. 경기시작 전보다 배당률이 떨어진 것은 이젠 승부가 뒤집어질 확률이 훨씬 적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어떤 간 작은 사내가 있다. 이 사내는 아까 경기시작 전에 배당률 4.1에 만원을 걸었다. 그런데 이 사내는 왠지 모르게 지금 두 골 차로 이기고 있는 San Lorenzo팀이 후반전에는 죽을 쓰다가 경기를 역전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 사내는 무엇을 하겠는가? 금융에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머리가 빨리 돌 것이다. 그렇다. 이 사내는 아까번의 Back (이긴다) bet은 그냥 둔 채로, 이번에는 그 반대인 이 팀이 이기지 못한다 (Lay)에 추가로 돈을 건다. 3만원 걸었다고 치자.
이렇게 되면 이 사태의 베팅 상황은 다음과 같다.
1. San Lorenzo (Back) 4.1 * 10000원
2. San Lorenzo (Lay) 1.5 * 30000원
한 팀이 이긴다와 이기지 못한다에 동시에 돈을 거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자, 이제 경기 종료 후 상황을 계산해보자.
만일 San Lorenzo 팀이 승리하면, 사내는 1번의 Back 벳에서부터 이익 31000원이 발생하는 한편 2번의 Lay 벳에서 손실: -30000* (1.5 - 1) = 15000원이 생긴다. 그러므로 순이익은 31000-15000 = 16000원이다.
반대로 San Lorenzo 팀이 승리하지 못하면 (즉 지거나 비기면), 사내는 1번의 Back 벳에 걸었던 10000원은 날리지만 2번의 Lay 벳에서 이익 15000원을 챙긴다. 그러니 순이익은 -10000+15000 = 5000원 이다.
즉, San Lorenzo 팀이 이기건 지건 비기건 간에 사내는 최소 5000원, 최대 16000원의 이익을 확보한 것이다.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이렇게 안전한 이익을 얻게 되는 이유는, 사내가 처음 돈을 건 순간 이후 상황이 사내가 예측한 방향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즉 San Lorenzo 팀이 전반 45분동안 골을 넣어주었기 때문에 사내에게 이러한 안전빵 찬스가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arbitrage 찬스는 시시각각 발생하고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기법은 국가대표 축구 경기에 대한 것이다. 영국 국가대표 축구팀의 경기가 있으면 애국심에 넘치는 아마추어 팬들이 경기 당일날에 "영국팀 승리"에 많은 돈을 걸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똘똘한 투자자(도박사)라면, 미리 "영국 승리"에 돈을 걸어두었다가 경기 직전 배당률이 떨어진 상태에서 Lay 벳을 걸어서 포지션을 청산하는 방법을 쓰면 아주 안전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주식의 옵션 거래와 똑같다. 옵션거래도 시간에 경과에 따라 이렇게 주식을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서로 맞바꿔서 포지션을 청산하면서 수익을 남긴다.
수익 모델
그렇다면 이 방법으로 왜 Betfair가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우선 Betfair는 수익금에 대해서 5%의 수수료를 떼어간다. 원금이 아닌 순수익금에 대해서만 수수료를 부과하므로 도박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다지 큰 돈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내가 만원 걸어서 천원 땄다면 수수료는 50원만 가져간다.
그러나 이런 수수료만으로는 사업이 재미가 없을 것이다. Betfair의 성공 비결은 "무승부 벳"에 있다.
스포츠 도박에 돈을 거는 사람들의 심리는 "승" 아니면 "패"이다. 보통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긴다, 혹은 진다는 데에 돈을 걸지 무승부가 날 것이라는데에 돈을 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스포츠 경기의 목적 자체가 승부를 가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축구경기에서 무승부가 날 확률은 25%-30%(프리미어리그) 정도인데, 무승부에 베팅되는 돈은 약 20%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무승부에는 돈을 잘 걸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Betfair의 사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사람들이 "승리"나 "패배"에 돈을 걸 때, Betfair는 회사돈을 가지고 "무승부"에 돈을 건다. "이기지 못한다"에 돈을 거는 것도 마찬가지 효과이다. 일반인들이 돈을 걸 때 무승부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을 벳페어의 수학자들과 컴퓨터공학자들이 간파한 것이다. 그래서 무승부가 나는 경기에서는 이 회사는 상당히 많은 돈을 고객들로부터 따올수가 있다.
실제로 Betfair의 수익의 많은 부분이 수수료가 아닌 이렇게 고객들과의 베팅 경쟁에서 나온다. 축구 경기에 무승부가 많이 나오는 해는 회사의 순이익도 커진다. 그런데, Financial Times 기사에 따르면 프리미어리그 축구가 해가 갈수록 무승부가 줄어들어서 이 회사의 큰 고민이라고 한다. 멘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등 상위권 팀과 하위권 팀들의 실력 격차가 벌어지면서 무승부로 끝나는 경기가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뭐 그래도 큰 걱정은 없다. 회사가 돈을 벌 수 있는 무승부 경기가 줄어들면서 경기당 수익률을 떨어졌지만, 워낙 고객 숫자가 늘어나고 베팅액수도 커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전체 수익은 매년 상승하고 있다.
금융권에의 도전
아직도 도박과 금융이 결국 마찬가지라는 것에 수긍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Betfair는 최근 Financial Bet 이라는 분야에 뛰어들었다. 지금까지 스포츠 경기를 대상으로 한 도박판을 벌이다가 이제는 아예 주식시장에 대한 도박을 벌이기로 했다.
내용은 간단하다. 영국 주가지수인 FTSE (풋시 라고 발음)가 오른다에 돈을 걸거나 내린다에 돈을 걸면 된다. 기간은 일주일부터 하루, 심지어 20분단위까지 있다. 위에 축구 도박과 마찬가지로 옵션성 거래도 가능한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주가지수에 베팅하는 것은 사실 증권사에서 많이 파는 주가지수 연동 펀드등과 다를바가 없다.
주식시장에 투자되는 돈은 실제로 주식증서를 사는 것이고 Betfair는 Betfair 안에서만 돈따먹기를 하는 것이라는 차이는 있으나 주식증서를 사고파는 것도 그 주식을 이미 발행한 기업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설명은 이미 앞에서 했으니, Betfair 에서 주식투자를 하는 것이나 증권회사에서 투자하는 것이나 기업이나 국가경제 입장에서 보면 다를 바가 거의 없다. 오히려 원금을 제외한 순이익에만 수수료를 물리고 세금은 전혀 없는 Betfair가 투자자들에게는 말그대로 더욱 fair한 투자가 아닐까? (게다가 축구 도박에 돈을 거는 사람들은 주식 시장에 돈을 거는 사람들보다 더 냉철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으므로 돈놓고 돈먹기 경쟁에서 이길 확률도 더 높다)
단, 주식이던 펀드건 경마건 Betfair건 뭐건간에 결국은 다 투자가 아니라 도박이라는 것을 잊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The Poker Face of Wall Street"의 저자 Aaron Brown은 이렇게 조언한다: "스릴을 느끼고 싶은 것이 목적이면 주식이나 포커를 하는 것보다는 암벽등반이 훨씬 건전하면서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스릴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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